6개월전에 예매를 해두고 그날이 올까요? 하며 기다린 공연.....
11월 끝자락 눈내리는 밤...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미샤 마이스키 첼로연주회에 다녀왔습니다...
30분 가량 커튼콜이 이어졌고 5곡 앙코르연주는 정성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유료관객률이 보통 90%대라는 게 당연스레 느껴질 정도였죠...
딸 릴리 마이스키와 함께 연주한 공연후기는 꼬날님이 잘 정리해주셨고...
전 프로그램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그의 얘기를 한자락 이곳에서 소개할까 합니다.
“내 나이는 37살”
유대인인 미샤 마이스키는 1970년 모스크바에서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을 다니며 각종 콩쿠르를 휩쓸던 때, 갑자기 18개월동안 감옥에 영문도 모른채 갇혔다고 합니다.
그때 나이 22살... 수감 이유조차 들을 수 없이...연주회가 하나둘 이유없이 취소되기 시작했고 마이스키는 그후 2년동안 그 분신처럼 여기던 첼로를 잡지 못한 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했다고 합니다...
1972년 11월 8일 이스라엘 망명길에 오른 마이스키.
“이때가 나의 두 번째 생일이다. '0'에서 모든 것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모든 게 어려웠다. 그래서 지금 내 나이는 37세다"
마이스키는 2년 후 미국에 건너가 보란듯이 최고의 첼리스트로 거듭나는데요...레너드 번스타인·주빈 메타 등과 한 무대에 서면서 세계 3대 첼리스트로 자리잡았습니다.
자신이 전부로 여기는 일을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못하게 됐을때 고통을 살짝 이해하면서..그때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며 나이가 37살이라고 말하는 열정과 의지가 놀라웠습니다...
"고통과 음악은 늘 함께 간다"
전 잘 나가는 연주자들이 그렇듯이 마이스키도 평탄하게 음악가의 길을 걸었을거라 으레 짐작하고 말았는데요...그의 히스토리는 그렇지 않더군요...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미샤 마이스키가 고통과 음악은 늘 함께 가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18세에 아버지를 잃었고, 그 다음날 콩쿠르에 나가야 했다면서 밝은 면 속에 어둠과 시련이 많은 사람이 자신이라 했습니다.
그에게 감옥에 갇힌 시간이 없었다면...음악성은 지금과 또 달랐을지도 모르죠...
고통이 깊은 만큼 음악도 깊어졌을테고...고통이 심해질수록 그에 반해 음악에 대한 열정은 더욱 커졌을테고 그 고통을 연주에 녹여내면서 음악성은 더욱 풍부해졌을테고...
드라마 황진이에선가...스승 백무가 황진이에게 "예인에게 가장 중한 벗은...술도 사랑도 재예도 아닌...바로 고통이다" 라고 토하듯 뱉던 말이 생각나더군요...(사랑을 독하게 품고 그를 잃은 슬픔으로도 웃을 수 있는 그때까지 춤을 추라고 대사가 나왔던 듯....)
그래서였을까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나 앙코르곡 "The day when I met U"은
첼로의 쓸쓸하고 슬픈 음색과 어우러져 금세 감정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버리더군요...
제 친구는 마이스키 연주를 들을 때마다 맘이 쓸쓸해져 눈물이 난다고 했었는데...
눈내리는 밤...깊은 음색의 첼로 연주...명불허전의 공연이었습니다.
PS - 함께한 친구들...행복했어요~











